배터리 기술 전쟁의 전장이 바뀌고 있다. 에너지 밀도를 높여 전기차 출력과 주행거리를 늘리려는 경쟁을 벌이던 배터리사들이 이제는 ‘얼마나 빠르게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느냐’로 기술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내연기관차가 주유를 마치는 속도와 비슷한 수준까지 배터리 충전 속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전기차 완전 대중화는 요원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주행거리나 비용 등이 과거에 비해 대폭 개선되면서 이제는 전기차 편의성의 핵심인 충전 속도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행거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난다고 해서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지만, 충전 속도가 대폭 줄어들면 전기차 소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SDI가 내부적으로 충전 속도 개선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로 놓고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삼성SDI는 경쟁사에 비해 빠르게 충전되는 배터리를 양산한다면 회사 실적을 대폭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게 충전 속도라면 고객사인 완성차업체들도 빠르게 충전되는 배터리를 우선적으로 사갈 것이란 게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2026년까지 600㎞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를 9분 안에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5분 안에 절반인 300㎞ 분량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현재 급속충전은 배터리 종류에 따라 20분~1시간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삼성SDI는 2026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300㎞ 충전에 5분’이라는 수치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자동차 주행거리 패턴을 분석한 결과 99.6%의 운전자는 하루에 300㎞ 이하를 운전한다”며 “5분 내 충전으로 대부분 운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온은 2030년까지 300㎞ 주행거리 기준 5분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삼성SDI가 내세운 2026년보다 4년 느린 시점이지만 SK온 측은 급속 충전기 등 인프라가 갖춰지는 속도를 고려할 때 2030년이 적합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아직 충전시간 목표를 외부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충전 속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는 지난달 7일 인터배터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급속 충전과 관련해 다양한 기술을 검토 중”이라며 “더블레이어라든지 실리콘 음극재를 활용해 충전 속도를 강화하는 것을 개발하고 있으며 적정 시점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충전 속도 개선은 생산 비용과 ‘상충 관계’인 만큼 비용을 유지하면서도 충전 시간을 낮추는 쉽지 않은 기술 개발 과정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각 배터리사는 충전 속도와 연관이 있는 리튬이온의 이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음극재의 소재 성능을 높이거나 음극재를 특수 코팅하는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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